
지난 여름, 친한 지인이 일본에서 선물로 벨비아100 필름을 사다주었다. 일본에서 현재 얼마에 판매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선 대략 5만 원 정도나 하는 엄청 비싼 필름.
잘 나왔으니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, 현상을 맡기려고 현상소에서 필름을 딱 꺼내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울트라맥스 400 필름을 물려둔 줄 알았다. 필름을 다 감고 필름실을 여는 순간 벨비아 100이 나왔고 그 순간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. 안 그래도 슬라이드 필름은 노출에 예민한데 잘못 세팅하고 찍었다니... 정말 많이 당황했던 순간.

다행히도 이 황당한 상황을 눈앞에서 보신 고래현상소 직원 분들께서는 당황하지 않으시며 증감 현상을 해주시겠다고 했다. 슬라이드 필름이 네거티브 필름에 비해서 노출에 예민하고 그러다 보니 화질의 열화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잘 나올 거라고 안심도 시켜주셨다.
여기서 증감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본다. 우리가 디지털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조금 어둡게 찍히거나 밝게 찍힌 사진들을 보정하는 과정을 거친다. 필름도 마찬가지로 증감/감감을 통해 더 밝게 현상하거나 더 어둡게 현상할 수 있다. 이때 증감과 감감은 애초에 디지털로 기록된 미러리스나 DSLR의 사진을 보정하거나 필름사진을 스캔한 스캔 사진을 보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현상 자체를 물리적으로 현상 시간 등을 다르게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. 문제는 필름은 롤 단위로 현상하기 때문에 사진마다 증감/감감이 필요하게 촬영하면 안 된다. 즉 촬영 시마다 감도를 다르게 바꾸면 안 된다는 뜻이다.
증감이나 감감의 정도를 계산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. 나의 경우는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+2증감 현상을 한 것인데, 감도 100 필름을 감도 400인 줄 알고 찍었기 때문이다.
계산을 어떻게 하냐고?
조리개, 감도, 셔터스피드 등이 두 배가 될 때마다 1스탑 차이가 난다. 계산은 어려울 게 없다.
예를 들면 감도 100, 셔터스피드 1/60, 조리개 2.8과 감도 200, 셔터스피드 1/60, 조리개 2.8의 사진은 정확히 1스탑의 차이가 난다. 왜냐하면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황에서 변화된 값은 감도뿐인데 감도가 정확히 2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. 그러한 이유로 400은 100 대비 +2스탑 차이가 나는 것이다.
필름은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필름 한 롤을 촬영할 때 감도는 고정을 해두기 때문에 감도 기준으로 증감 혹은 감감을 해주면 된다.
아래 사진을 어차피 보여드릴 텐데, 결론만 얘기하면 사진은 굉장히 잘 나왔다. 지난 슬라이드 필름은 솔직하게 말해서 건진 사진이 별로 없었는데, 이번 사진은 애초에 감도를 다르게 설정해두어서 증감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건질 사진이 많았다.



다시 봐도 정말 놀라운 퀄리티다. 입자감도 너무 곱다. 색 표현도 이 정도면 정말 너무 좋지 않은가. 지금 내가 쓰는 렌즈나 카메라는 고급카메라도 고급렌즈도 아니다. 남대문에서 미놀타 x-300 사면 그냥 끼워서 주는 50mm 1.4렌즈다. 그런데 이 정도로 나올 줄이야. 돈 많으면 2~3롤에 하나쯤은 고민 없이 벨비아100을 물려놓고 싶은 마음이다. 심지어 이게 증감해서 화질의 열화도 있는 상태라니.

고래 현상소에 다녀왔던 이 날은 날씨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. 겨울이었으니 춥기는 무척이나 추웠지만 버텨낼 수 있는 추위였기에 진양 꽃 상가부터 세운 상가까지 한 바퀴 크게 돌면서 사진을 촬영해보기로 했다.


진양 꽃 상가 전경과 진양 꽃 상가에서 본 충무로 골목길




진양 꽃 상가에서 세운상가까지 걸어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풍경





5만 원짜리 필름인 줄 몰랐기에 찍은 사진들, 근데 아마 미리 알았더라면 필름 아끼다가 다 못 찍었을 것 같다.
걷다 보니 어느새 손이 얼어버렸다.
다시 충무로로 돌아가는 길에 여태 지나온 많은 카페들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, 아래 사진의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서는 바로 정해버렸다.

이번 벨비아 필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아마도 위의 사진일 것 같다. 사진만 보면 한국인지 모를 사진이라 더 좋다. 마치 유럽에서 찍은 것 같은 느낌이다. 창문으로 비치는 이미지가 정 너무 예뻐서 담지 않을 수 없었다.

충무로로 돌아가는 길, 36장의 필름을 거의 다 써서 마지막 필름 낭비로 남산타워 한 장 남기고, 고래사진관에 현상을 맡겼다.


벨비아100 현상을 맡기고 필름을 받아보니 '이 맛에 슬라이드 필름 찍지'라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. 빨리 슬라이드 필름도 컷 별로 잘라서 보관해야겠다. 슬라이드 필름 뷰어도 사볼까나.
그래서 벨비아 100 필름 또 쓸 것 같아? 라고 물어본다면, Yes! 그래서 샀어? 라고 물어본다면 No!
정말 마음에 들지만 선뜻 손이 가기 어려운 필름 가격이기에 바로 사서 막 촬영할 것 같진 않지만 집에 한두 개는 마련해두고 싶은 필름이었다.
필름 생활을 한다면 한 번 쯤은 꼭 찍어보기를 추천한다.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보답할테니.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